http://www.gdcvault.com/play/1014653/In-Days-of

작년, 25주년 GDC에서 있었던 크리스 크로포드의 강연 중에, 강연 마지막 부분과 질의응답 부분을 옮겼음. 강연 전반부는 그가 게임을 만들었던 시절의 게임 개발 환경과 컴퓨터 하드웨어에 대한 이야기인데, 후반에 주는 메시지와 공명하는 내용이긴 하지만 그것까지 요약하긴 너무 기니까, 일단 가장 핵심적인 후반부만 살짝 옮겼다.

질의응답도 모 컴퓨터 역사가의 찬양성 발언과 소스 코드 공개 여부에 대한 질문(대답은 "전 프로그래머라기보단 디자이너에 가까워서 코드가 형편 없는데...어쨌든 생각해보죠.")은 뺐고, 옮겨온 내용들도 조금 정리했다.

당시[70년대~80년대 초]에는 온갖 종류의 게임들이 있었죠. 기이하고 이상한 것들이 많이 만들어졌어요. 형제가 합심해 2-3만 달러면 게임을 만들 수 있어서, 하려는 사람들은 다 했습니다. 온갖 나쁜 게임, 끔찍한 게임, 쓰레기들도 다 나왔죠. 그래도 엄청난 다양성이 있었어요.

오늘날엔 그만한 다양성이 없습니다. 게임 만드는 데 수백만 달러가 들어가면 그렇게 창조성을 발휘하기가 어려우니까요. 그게 예전과 오늘날의 큰 차이 중 하나입니다.

자, 그럼..."빠빠라바빠라밤~!" [피리 같은 것을 분다] 크로포드의 소프트웨어 디자인 제1법칙! 게임이나 소프트웨어를 디자인하려고 할 때 그 과정내내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하는 게 있습니다. "사용자가 무엇을 하는가?" 무엇을 보는가, 무엇을 듣는가도 아니라, '무엇을 하는가'입니다. 플레이어는 게임을 보거나 듣는 게 아니라 플레이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게임은 플레이어가 무엇을 하는가로 서술됩니다.

그럼 예전과 지금의 게임을 비교하며 살펴보죠.

브레이크아웃과 앵그리 버드, 컴뱃과 헤일로, 스페이스 패닉과 3D 슈퍼 마리오, 동부전선 1941과 문명 5.

기본 구조는 바뀌지 않았습니다. 지난 30년간 플레이어가 무얼하는가는 바뀌지 않았어요. 여기서 조심해야 할 것이, 저는 현재의 게임들이 옛날 게임보다 나은 게 없다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닙니다.

커다란 괴물이 도시를 공포에 빠트리고 사람들이 괴물을 무찌르는 영화의 기본 구조 중 하나를 보죠. 킹콩, 고질라, 쥬라기 공원에 이르기까지 기본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쥬라기 공원은 킹콩과 같은 구조를 지니고 있어요. 그렇다고 쥬라기 공원이 킹콩보다 나은 게 없다는 게 아닙니다. 쥬라기 공원이 킹콩보다 수억만배는 낫죠. 하지만 그 기본 구조는 같다는 게 제가 말하려는 겁니다.

현대의 컴퓨터는 옛날 컴퓨터보다 수십억배는 좋습니다. 앵그리 버드가 브레이크아웃보다 수십억배 나은가요? 헤일로가 컴뱃보다 수십억배 나은가요? 마리오가 스페이스 패닉보다 수십억배 나은가요? 문명 5가 동부전선 1941보다 수십억배 나은가요? 이건 제가 답할 게 아니라, 여러분이 숙고해보아야 할 질문입니다.

제가 1982년에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게임 디자인에는 '사람'이 없다는 겁니다. 엔터테인먼트란 근본적으로 사람에 대한 겁니다. 이야기, 영화, 모두 사람에 대한 것이죠. 그런데 게임은 '사물'에 대한 겁니다. 저는 이걸 간단한 슬로건으로 말하곤 하는데요.

"사물이 아니라 사람을!"

당시 저는 이것이 게임 업계가 직면한 핵심적인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도 여전히 그렇죠. 업계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인식하고 있는지 모르겠네요.


[강연 마무리. 질의응답 시간 시작.]


질문자: 그 아타리 시대에 대해 들으면서 생각했는데요. 당시의 기술적 한계에도 인공지능이나 상호작용 면에서 상당한 야심을 지니고 있었죠. 지금 해봐도 대단한 게임들이 있어요. 그런데 지금은 그런 높은 이상이 비즈니스와 잘 융합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시장 문제입니다. 당시에는 누가 홈 컴퓨터를 샀는가 하면, 상당히 비쌌기 때문에 주로 중상류층이었고, 굉장히 지적인 게임을 썼습니다. VCS는 어린이용이었기 때문에 보통 그런 게임이 없었죠. 홈 컴퓨터는 전혀 다른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었기 때문에 게임도 달랐던 거에요.

질문자: 저는 몇 시간 동안 질문을 던지고 싶은 마음인데, 한 가지 가장 묻고 싶은 걸 고를게요. 스팀 같은 디지털 배급으로 게임을 퍼트리는 현재의 PC 인디 씬과 컴퓨터 가게에 게임이 담긴 지퍼백을 걸어놓던 80년대 초의 독창적이고 대담한 시기에 유사점이 있다고 생각하나요?

먼저 고백해야 할 것이 있는데, 저는 인디 씬에 대해 그렇게 잘 알지 못 합니다. 형편 없는 것 어느 정도 해보고, 정말 인상적이었던 것 몇 개 정도 해봤죠.

가장 큰 차이라고 한다면 그 인디 씬이 예전 시대만큼 다양하지 않다는 겁니다. 그 이유는, 많은 인디들이 이미 기존에 존재하는 게임에 마음이 오염되었기 때문입니다. 내내 똑같은 유형의 게임들을 플레이하면서 그 틀 밖으로 나가기란 어렵죠. 예전에는 누구도 게임이 뭔지 몰랐습니다. 그냥 알아서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정말 많은 사람들이 진짜 진짜 질 나쁜 게임들을 만들었죠. 하지만 전통이나 역사가 없었기 때문에 사람들의 상상력이 제한받지 않았습니다. 그게 아마 가장 큰 차이라고 생각해요.

또 다른 차이라면 지금 존재하는 인디 개발자들에 비해 예전에 게임을 실제로 만드는 사람이 더 적을 거란 겁니다. 인디 게임은 정말로 많아서 그 안에 보석을 찾기가 정말 힘들어요.

질문자: 드래곤 스피치[크로포드가 게임 업계 은퇴를 밝히며 인터랙티브 스토리텔링에 도전하겠다고 천명했던 1992년 GDC 강연]에서 밝혔던 포부가 성공했다고 생각하나요?

실패했습니다. 제가 그 때 말했던 것은 사람에 대한 게임을 만들고자 게임 업계를 자유롭게 하려는 거였습니다. 그래서 그 수단을 연구하기 시작했고, 지난 20년간 커다란 진전을 이루었습니다. 저는 그간 이룬 것이 자랑스럽지만, 중대한 문제가 있었습니다. 저는 달에 도달할 수 있는 굉장한 로켓을 만들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몇 년 전에 장렬하게 발사시켰는데, 결국 추락했습니다. 이제 다시 돌아가 새로운 생각을 가지고 작업하고 있습니다. 전망은 낙관적입니다. 제가 앞으로 20년 더 산다면 해결할 수 있을지 모르죠.

질문자: 당신의 노력이 결국엔 우리를 달에 도달하게 할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음, 아마도요. 제 역할은 누군가를 위해 철조망을 거두는 겁니다. 누구도 가지 못 한 땅으로 가는 철조망에 제 몸을 던져서 누군가 제 시체를 밟고 넘어갈 수 있게요. 

질문자: 그동안 당신이 해왔던 걸 봐왔습니다. 또 다른 40년 동안 제가 해나갈 겁니다.

네, 좋아요! 하세요! 하하하.

질문자: 읽어야 하는 책, 해야 하는 게임 추천해주실 수 있나요?

아, 먼저 말하고 싶은 건, 전자 게임 이외의 게임 분야를 살펴보란 겁니다. 보드게임처럼요. 정말로 독창적인 것들이 많아요. "일루미나티"의 디자인은 정말 독창적이고 영리하죠. 레드몬드 시몬센이 디자인한 "스타포스 알파 센타우리"도 굉장히 영리한 디자인인데, 정말 오래 되서 찾기가 어려울 거에요. 컴퓨터 게임만 하다보면 선입관에 보지 못 하는 게 생깁니다.

책이라면 "호모 루덴스"와 "만화의 이해"를 추천해요.

또 다른 점에선, 과정에 대한 것이라면 뭐든 배워야 해요. 진화, 두뇌의 작동, 생리학, 물리, 역사 등 과정이 관여되는 것이라면 모두요. 게임 디자이너는 사실보다는 과정에 익숙해져야 합니다. 자신을 온갖 과정들에 노출시켜야 해요.

아주 극단적인 경우긴 한데, 언젠가 굉장히 어려운 알고리듬 문제를 놓고 분투하다 그게 마야인이 달력을 만드는 체계와 비슷하단 걸 알게 된 적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체계가 제가 지닌 문제의 완벽한 해법이었죠.

요점은, 과정에 대한 것은 뭐든 읽으란 겁니다.

질문자: '사람에 대한 게임'을 더 자세히 알고 싶은데요. 게임을 함께 플레이하는 사람을 말하는 건가요. 아니면 싱글 플레이어의 경우에도 해당하나요.

사회적 상호작용을 말하는 겁니다. 유명한 영화나 소설을 보세요. 해리포터는 아이들이 서로 관계를 맺는 이야기입니다. 마법 같은 것들은 경이로운 배경을 제시하죠. 하지만 그 책의 핵심은 해리포터와 세계, 해리포터와 론, 해리포터와 헤르미온느, 론과 헤르미온느의 관계 같은 것들입니다. 스타 워즈, 매트릭스, 반지의 제왕 모두 캐릭터가 핵심입니다.

반지의 제왕의 가장 중요한 장면인, 프로도가 운명의 산에서 반지를 던지려할 때 유혹을 느끼는 장면을 보세요. 그 장면에서 중요한 건 그가 느끼는 감정입니다. 프로도는 총을 쏴대면서 산을 올라가지도 않았고, 퍼즐을 풀어야 했던 것도, 장애물을 넘어가야 했던 것도 아닙니다. 그는 평범한 사람이었지만 굉장히 비범한 상황에 말려들게 되었고, 그것에 평범한 사람답게 반응합니다. 그리고 용기로 거의 극복 불가능한 상황을 극복하게 되죠.

그게 영화와 소설이 사람을, 사람의 감정을 다룬다는 겁니다. 그런데 게임 업계는 사물에 집착하죠. 그걸 다 날려버리고 새로운 방식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그런데 제가 게임 업계를 위해 한 가지 변호하자면, 지난 20년간 제가 했던 노력에서도 분명히 느낀 바인데, 이게 정말로 어려운 문제란 겁니다. 업계가 이에 실패한 건 관심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정말 어려운 문제기 때문입니다. 헤일로를 두고 캐릭터를 집어넣자 하는 건 안 됩니다. 사물에 대한 게임에 사람을 집어넣는 건 안 되요. 바닥부터 새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건 지금 당장 누구도 다가가지 못한 영역이죠.

게임 업계가 이걸 위한 연구소를 세우고 많은 돈을 투자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개별적으로 시도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규모가 너무 작습니다.

질문자: 사람에 대한 게임을 만들자는 데 동의합니다. 그런데 회화나 시처럼 사람이 아니라 자연의 아름다움 등을 다룬 게임에서도 뛰어난 작품이 나올 수 있지 않을까요?

네,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일부 게임은 그걸 시도했고, 어느 정도는 성공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이건 정말 예술이다" 할만큼 성공한 건 아직 없죠. 그런데 그 쪽의 문제는, 그 쪽으로 시도하는 사람은 상호작용성을 많이 줄이는 경향이 있다는 겁니다. 좋은 게임 디자인은, 컴퓨터로 하는 것 무엇이든 본질은 상호작용이에요.

영화가 처음 나왔을 때, 사람들은 그걸 연극 같은 것이라 생각하고 연극이나 연극 같은 구성을 그대로 찍거나 하곤 했어요. 그런데 D.W. 그리피스란 사람은 영화란 무엇인가를 고민하며 사람의 얼굴을 클로즈업하거나 사람의 손을 보여주거나 많은 걸 시도하며 영화의 본질에 다가가고자 했습니다.

아직 상호작용의 본질에 다가간 한 사람은 없지요..

질문자: 그러면 당신은 상호작용의 본질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저는 상호작용 그 자체가 본질이라고 생각해요. 그것만 가지고 강연을 새로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그것을 대화라고 생각하면 좋습니다.

기존 예술과 다르게 게임은 예술가와 관객이 대화를 하죠. 그런데 우린 아직 그걸 어떻게 제대로 해야할지 몰라요. 우선은 대화라는 걸 상호작용성에 영감을 주는 모델로 생각하고 나아가면 좋다고 생각합니다.

Posted by 밝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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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오진우 2012.12.21 16: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본질적인 것에 고민하게 만드는 글이네요.
    번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