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 RPG 포럼 "RPG 코덱스"에 재밌는 쓰레드가 올라왔길래 번역해봤습니다. 옵시디언 엔터테인먼트에 근무했었던 프로그래머 앤서니 데이비스가 옵시디언 시절의 비화를 줄줄이 꺼내놓고 있는데요. 쓰레드를 여는 이야기가 뉴 베가스와 프로젝트 이터니티의 디렉터인 조쉬 소이어의 이야기입니다.

데이비스는 조쉬 소이어가 얼마나 열정적이고 능력 있는 디자이너인지, 네버윈터 나이츠 2 개발 막바지 때의 일화를 들어 이야기합니다.

당시 네버윈터 나이츠 2의 개발상황은 혼돈이었습니다. 그 정점을 찍은 사건은 디렉터였던 페렛 보드앙이 개발 도중 돌연 바이오웨어로 이직해버린 사태였죠. 이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옵시디언은 미드웨이에 있던 조쉬 소이어를 불러옵니다. (소이어는 옵시디언의 전신인 블랙아일에서 리드 디자이너로 일하기도 했었습니다.)

출시까지 3개월 남은 상황에서 디렉터를 맡게 된 조쉬 소이어의 일화를 한 번 들어봅시다.


요, 꼬마들. 옛날 이야기 해줄테니 앉아서 잘 들으세요.

조쉬 소이어가 왜 프로그래머들의 디자이너인지 말해주는 네버윈터 나이츠 2 동화입니다.

페렛이...그러니까..."떠나버린" 후, 네윈나 2 완성 직전에 조쉬 소이어와 크리스 아벨론이 함께 리드 디자이너 역할을 맡았어요. 크리스는 내러티브를 제대로 완성하는 것은 물론 무엇을 넣고 뺄지 어려운 판단을 하는 일에 매달렸죠,

조쉬는 D&D 시스템과 게임을 재밌게 만드는 일에 집중했는데, 그런 걸 하기엔 남은 시간이 얼마나 촉박했는지 생각해보세요.

프로그래머들은 대부분 벽장을 사무실로 개조해서 어둡고 환기도 제대로 안 되는 곳에 앉아 일했습니다. 옵시디언이 지금 어바인에 있는 멋진 사무실로 옮기기 전의 이야기입니다. 어쨌든 이 남자 냄새나는 어두운 방들은 네윈나 2의 시니어 프로그래머 중 한 명이었던 브라이언 로슨의 이름을 따서 '블로슨의 계곡'이란 애정어린 이름으로 불렸습니다.

당시 저는 다른 시니어 프로그래머인 리치 테일러와 사무실을 같이 쓰고 있었죠.

우리들은 일주일 내내 하루 10~14시간을 일했는데, 프로그래밍 쪽에서는 항상 일정에 뒤쳐지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러던 어느날 조쉬가 블로슨의 계곡에 와서 저와 리치의 사무실에 모습을 드러냈어요.

조쉬: "요, 이 게임이 팬들에게 충분히 만족스럽지 않을 것 같음."

리치와 나: "ㅇㅇ 근데 지금에 와서 뭘 할 수 있겠듬?"

조쉬: "제대로 기능하는 신격 시스템을 넣고 싶음요. 클래스와 성별, 성향을 존중하면서 강제적인 부분도 넣고 싶음. 클래스나 성향이 바뀌면 플레이어의 신이 플레이어를 거부하고 다른 신을 골라야 하는 거임."

조쉬는 보드에 자기가 만든 신격 시스템을 그리면서 광장히 디테일하게 설명하기 시작했어요. 제대로 준비해서만들어왔다는 걸 알 수 있었죠.

나: "조쉬, 그거 정말 훌륭함 ㅇㅇ 근데 네윈나 1 엔진에서는 데이터와 이벤트 설정이 제한적인데다 딱 하나의 문자열만 넣을 수 있음. 거기에 데이터 검증도 못 걸음. 게다가 나 지금 무지 바쁘고 일정도 늦어지고 있듬."

조쉬: "근데 이거 해야됨. 팬들한테 뭔가 만족스러운 걸 줘야함."

나: "클라이언트/서버가 주고받을 수 있도록 단 하나의 문자열 변수로 작동 가능하게 만들어오면 모르겠음. 그리고 지금에 와서 이벤트 더 추가할 수도 없으니 레벨 업 같은 미리 정해진 지점에서만 체크할 수 있어야 됨."

조쉬: "ㅇㅇ 금방 돌아오겠듬."

30분 후...

조쉬는 돌아와서 제가 제시한 조건에 거의 들어맞는 신격 시스템을 다시 설명했어요. 물론 제가 몇 가지를 바꿔야 했고 제가 다 구현해야 했던 거지만, 순식간에 이게 '가능한 일'이 되어버린 것이에요.

저는 금요일 밤, 토요일, 일요일, 월요일 아침까지 그걸 만든 다음 조쉬한테 보여줬어요. 몇 가지 버그를 빼면 잘 작동했지요. 조쉬는 아주 만족하고는 시스템의 데이터 부분을 구현했어요.

이때만 해도 앤드류 우와 제가 네윈나 2의 첫 확장팩이자 토먼트 이후 최고의 RPG 중 하나인 배신자의 가면을 만들 때 그 시스템을 기반으로 사용하게 될줄은 몰랐어요.

근데 사실 인사평가 때 이 시스템 구현 때문에 제 스케줄 빼먹었다고 징계를 받았어요.

화내지 마세요. 그런 행동이 프로젝트를 궤도에서 이탈시키는 법이니 평가자 입장에서는 당연한 겁니다. 스케줄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때로 돌아가도 똑같이 할 거에요. 그 결과가 게임을 더 좋게 만들어줬으니까요. 당시 저는 징계당한 것 때문에 화를 냈는데요. 지금 성장하고보니 그 이유를 이해하게 됐습니다.


...이건 조쉬가 광장한 디자이너이자 프로젝트 디렉터임을 보여주는 일례일 뿐입니다. 완벽한 사람은 아닙니다. 하지만 자기가 원하는 걸 얻기 위해 시스템 속에서 어떻게 일할지 정말 잘 이해하는 디자이너입니다. 현실적이지 못한 것을 어떻게든 구현해야 한다며 몇시간이나 저랑 논쟁하는 디자이너들이 많았어요.

많은 디자이너들, 특히 신입 디자이너들은 실제로 만들 게임 엔진에 대한 이해도 없이 머릿 속에서 온갖 굉장한 시스템과 컷씬을 만들어내죠.

프로그래머 입장에서는 균형잡기 까다로운 일입니다. 디자이너들의 의지를 제약하고 싶지 않지만, 결국 직접 다 코딩하고 어떻게든 완성해내야 하는 건 자기니까요.

게임 엔진을 이해하고, 게임 세계를 이해하고, 도구를 이해하는 부분에서 조쉬는 정말 프로입니다. 조쉬는 제대로 아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모른다면 알 때까지 적절한 질문을 할 줄 아는 사람이죠.

Posted by 밝은해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Argion 2013.05.28 20:3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생각한거 이상으로 굇수 디자이너네요 ㄷㄷㄷㄷ
    이터니티 설명할때 보면 "이사람 꽤나 어떻게 어떤 요소를 넣는지 잘 아는구나" 싶었는데 저걸보면 그 이상의 인물이었나 보네요 ㄷㄷㄷ

    그보다 네윈나2 개발하다 가버린 사람은 네윈나2 욕하고 갔다지만 그거그렇게 만든게 자기면서 뭘 욕을 하나.... 그래놓고 가서 내놓은게 드에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