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 라이트가 게임의 미래를 특집으로 한 와이어드지 2006년 4월호에 기고했던 글입니다. 라이트가 생각하는 게임의 미래, 그리고 당시 "스포어"로 한 발짝 다가가고자 했던 미래를 읽어볼 수 있습니다.

이 때가 다음에서 와이어드 뉴스 코리아를 서비스했을 무렵인데 지금은 서비스가 사라져서 이 글의 번역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모르겠네요. (있더라도 웨이백 머신에 남아있는지 모르겠고.) 여하간 상당히 재미있고 흥미진진하고 또 격려가 되는 글입니다. 벌써 7년 전 글이라니 감회가 새롭네요.


꿈 기계

Dream Machines / 와이어드 2006년 4월호


윌 라이트

인간의 상상은 굉장한 물건이다. 아이일 때 우리는 막 탐구하고 이해하기 시작한 주변 환경을 장난감과 가장 놀이로 대체한 상상 속 세계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우리는 놀면서 배운다. 그리고 놀이는 성장하면서 복잡해진다. 규칙과 목표가 더해진다. 그 결과가 우리가 부르는 게임이다.

이제 그 전 세대보다 더 다양한 종류의 게임을 다양한 방식으로 플레이해온 한 세대가 성장했다. 새로운 게임을 받은 아이를 보라. 설명서 읽기는 뒷전이다. 가장 먼저 컨트롤러를 집고 버튼을 눌러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살펴본다. 이 과정은 마구잡이가 아니다. 과학적 기법의 본질과 비슷하다. 플레이어는 시행착오를 거치며 플레이해서 모은 실증적 증거를 바탕으로 자기 안에 기본적인 게임 모형을 구축한다. 플레이어는 이 모형을 정제하면서 게임 세계를 숙달하기 시작한다. 그것은 가설과 실험, 분석의 재빠른 사이클이다. 그리고 설명서를 먼저 읽는 부모 세대의 선형적 접근법과 근본적으로 다른 문제 해결 방식이다.

구조화된 교육과 표준화된 시험의 시대에는 아직 이 세대 차이가 명백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게이머의 사고방식(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학습하고 있다는 점)을 보면 그들은 세상을 소비가 아닌 창조를 위한 장소로 보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진정 비디오게임이 우리 문화에 미치는 영향이다.

하지만 사회는 부정적인 면에만 주의를 기울인다. 세대 구분의 저편, 장년층에 있는 사람들 대부분은 게임을 바람직하지 못하게 (폭력적, 중독적, 유치, 무가치하게) 본다. 이 중 몇 가지는 맞는 말이다. 그런데 어째선지 게임의 긍정적인 측면(창조성, 커뮤니티, 자존감, 문제 해결)은 게이머가 아닌 사람들에게 잘 보이지 않는다.

이 문제는 게임 하는 사람을 관찰하는 일과 컨트롤러를 직접 쥐어 플레이하는 경험이 다르다는 데 일부 원인이 있다고 본다. 무지막지하게 다르다. 영화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극장에 앉은 관객을 관찰해서 알아낸 것 뿐, 직접 영화를 본 적은 없다고 상상해보라. 영화는 무기력증과 정크푸드 소비를 유발한다 결론지을지도 모른다. 그 자체는 틀린 말이 아닐 수 있지만 큰 그림을 놓치고 있다.

이제 우리는 게임을 다시 생각하면서 게임은 무엇이 다르고 어떻게 문화를 이롭게 하는지 파악해야 할 때다. 가령, "가능 공간"[possibility space]을 생각해보자. 일반적으로 게임은 뚜렷하게 규정된 상태(체스라면 시작 배치)에서 시작하여 특정한 상태(킹이 체크메이트됨)에 도달할 때 끝난다. 플레이어는 자신의 선택과 행동으로 이 가능 공간을 항해한다. 플레이어마다 그 항해 경로가 다르다.

게임은 다른 어느 매체보다도 가능 공간을 잘 육성(그리고 개척)한다. 선형적 스토리텔링에서는 서사를 둘러싼 가능 공간을 상상하는 데 그친다. 루크가 어둠의 세력에 들어갔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네오가 구세주가 아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상호작용하는 매체에서는 직접 탐구해볼 수 있다.

어릴 적 장난감처럼 현대의 비디오게임은 플레이어의 적극적 참여에 의존한다. 우리는 공들여 모사된 세계와 캐릭터, 스토리라인과 함께 창조하며 상호작용하도록 유인된다. 게임은 그저 공상의 세계를 탐구하는 데 그치지 않으며 실제로 우리가 지닌 상상력을 증폭한다.

이렇게 생각해보자. 대부분 기술은 우리 신체의 어떤 부분(자동차/다리, 집/피부, TV/감각)을 강화한다고 볼 수 있다. 컴퓨터는 그 시작부터 인간 두뇌의 확장으로 간주되었다. 최초의 컴퓨터는 기계 두뇌이자 분석 엔진이라고 불렸다. 우리가 보는 컴퓨터의 최우선 가치는 인간의 빈약한 능력을 훨씬 뛰어넘는 자동화된 숫자 계산이었다.

하지만 인터넷이 나타나 우리가 근사한 계산기로 생각했던 물건을 이메일과 채팅, 메신저가 있는 근사한 전화기로 바꾸어 놓았다. 결국 우리는 컴퓨터를 수학 능력을 강화하는 데 쓰지 않고 사람의 능력을 확장하는 데 쓰게 되었다.

이와 동일한 변화가 게임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초기의 컴퓨터 게임은 원시적인 그래픽과 단순한 문제가 있는 작은 장난감 세계였다. 화면 위 작은 얼룩을 사람이나 탱크로 바꾸는 것은 플레이어의 상상력이었다. 컴퓨터 그래픽이 발전하면서 게임 디자이너들은 헐리우드에 대한 선망을 드러냈다. 정교한 컷씬과 웅대한 플롯에 굉장히 디테일한 그래픽도 더했다. 그들은 세계 구축과 스토리텔링은 전문가가 해야 한다는 생각에 빠져서 플레이어를 밀어냈다. 하지만 그 게임 디자이너들은 컴퓨터의 처리 능력에 황홀한 나머지 저기서 돌아가고 있는 두 번째 프로세서의 존재를 잊어버렸다. 바로 플레이어의 상상력이다.

어떤 게임 디자이너들은 헐리우드로 가는 대신 그 두 번째 프로세서를 활용해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의 벽을 무너뜨리려고 한다. 미디어는 소수(스튜디오, 출판사, 회사)가 개발하여 모두가 단일한 형태로 소비하는 것이란 관념에서 벗어나, 우리는 가능성의 세계를 열어 젖힌다. 플레이어의 창조력을 방치하는 대신 그 도움을 받아 우리의 디지털 세상을 구축하고 설계하고 채운다.

이제 더 많은 게임이 캐릭터부터 차량까지 가상 세계의 어떤 면을 플레이어가 발명할 수 있게 한다. 그리고 더 많은 게임이 플레이어를 세계 구축의 파트너가 되도록 유인한다. 이런 상상력 넘치는 활동을 위해 구성된 온라인 커뮤니티는 웹에서 가장 생기 넘치는 현장 중 한 곳이다. 이런 플레이어들에게 게임은 단순한 오락에 그치지 않고 자기 표현의 매개가 된다.

게임은 거의 모든 형태의 엔터테인먼트 매체를 포괄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게임은 스토리를 말해주고, 음악을 틀어주고, 도전을 제공하고, 다른 사람과 소통하고 상호작용하게 하고, 무언가 만들게 장려하고, 새로운 커뮤니티에 연결해주고, 놀게 할 수 있다. 대부분 다른 매체 형식과 달리 게임은 타고난 가단성이 있다. 모드[mod]는 이 길의 첫 발일 뿐이다.

얼마지 않아 게임은 플레이어에 대한 모형을 구축하기 시작할 것이다. 플레이어가 무엇을 자주 하고, 무엇을 잘 하고, 무엇에 흥미를 가지고, 무엇에 도전을 느끼는지 게임이 배우게 된다. 게임은 우리를 관찰할 것이다. 우리가 내린 결정을 기록하고, 우리의 문제 해결 방식을 고려하고, 다양한 상황에서 보이는 솜씨를 평가할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이 게임들은 각 개인에 "맞춰서" 스스로를 수정할 것이다. 즉석에서 난이도를 조절하고, 새로운 콘텐츠를 가져오고, 스토리라인을 만들 것이다. 그걸 위한 재료의 많은 부분을 다른 플레이어가 만들 것이며, 시스템은 그걸 가장 잘 즐길 사람들에게 전달할 것이다.

게임은 우리 개개인에 맞춰 즐겁게 하고, 교육하고, 참여하게 하도록 진화하고 있다. 이렇게 개인화된 게임은 우리가 고른 책과 음악이 그렇듯이 우리의 정체성과 취향을 반영할 것이다. 게임은 우리가 스스로를 표현하게 하고, 타인을 만나게 하고, 희미하게 밖에 상상할 수 없었던 것들을 만들게 해줄 것이다. 그리고 어느 때보다 더욱, 게임은 인간이 지닌 상상력의 가시적인 외적 확장이 될 것이다.



Posted by 밝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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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카스피뉴 2013.11.13 12:0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주인장님 정말 좋은 글이라 퍼갑니다.

  2. BlogIcon 칼스타이너 2014.09.01 21:4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퍼갑니다. 게임에 대해 간만에 정말 공감가는 글을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