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키피디아에 실린 사진인 덕에 시드 마이어 관련 기사를 보면 거의 이 사진을 보게 되지요...

시드 마이어의 게임 디자인 규칙이라 하면 "흥미로운 선택의 연속"이라는 말이 가장 먼저 떠오르지요. 국내외에서 20년 가까이 유행하고, 해석하고, 과용된 덕에 마이어 본인의 발언 수와는 관계없이 마이어는 그것 밖에 말하지 않나 착각이 들 정도입니다. (작년 GDC에서는 마이어 본인이 본 주제를 들고 나와 강연까지 하긴 했지만요.)

시드 마이어의 스튜디오 파이락시스 게임즈에서 《문명 4》의 리드 디자이너를 맡았던 소렌 존슨은 2009년 게임 디벨로퍼 매거진에 기고한 칼럼을 통해 그 유명한 것 말고도 마이어가 세운 유용한 게임 디자인 규칙이 많다고 말합니다.

마이어의 게임 디자인 철학이라면 그것에 동의하는가 여부와는 상관 없이 읽어보지 않을 이유가 없지요. 게다가 널리 읽히도록 만들면 더 좋겠죠. 그래서 번역했습니당...읽어보시지요.


시드의 규칙

Sid's Rules

소렌 존슨

게임 디벨로퍼 매거진 2009년 1월호

대다수 게임 개발자들은 "좋은 게임은 흥미로운 선택의 연속"이라는 시드 마이어의 언명과 친숙하다. 실제로 나와 공동으로 칼럼을 싣는 데미언 슈버트는 2008년 10월호에 실린 플레이어 선택에 대한 글을 이 유명한 말과 함께 시작했다. 그런데 시드는 경력을 이어오면서 그 외에도 몇 가지 보편적인 게임 디자인 규칙을 발전시켜왔다. 나는 파이락시스 게임즈에서 7년(2000~2007)간 일하며 시드가 그 규칙들을 이야기하는 걸 여러 차례 들었다. 시드의 이런 식견이 디자이너들에게 실용적인 교훈이 될 수 있는만큼 한 번 논해보는 것이 좋겠다.

두 배로 키우거나, 반으로 자르거나

좋은 게임이 진공 상태에서 태어나는 일은 드물다. 그런 이유로 많은 디자이너들은 극초기에 간단한 프로토타입을 만들고 출시될만한 게임이 될 때까지 되풀이하는 디자인 과정을 선호한다. 시드는 이 과정을 "재미를 찾아서"라고 부르는데, 그 성공률은 대체로 팀이 아이디어를 개발하고 결과를 플레이테스트한 뒤 피드백에 따라 조정하는 과정의 횟수에 직결되어 있다. 팀이 이 과정을 거칠 수 있는 횟수는 한정적이므로 개발자들은 작은 변화로 시간을 낭비해서는 안 된다. 게임플레이를 조정할 때는 명백한 반응을 일으킬 수 있게 상당한 변화를 노려야 한다.

어떤 유닛이 너무 약하다면 그 비용을 5% 줄이는대신 힘을 두 배로 늘려보라. 플레이어가 너무 많은 업그레이드에 압도될 경우 절반으로 줄여보라. 오리지널 《문명》에서는 신음하며 기어다닐 정도로 게임플레이가 계속 느려진 적이 있었고 시드는 지도 크기를 절반으로 줄여서 문제를 해결했다. 그렇게 나온 새로운 값이 올바를 가능성이 높다는 뜻은 아니다. 연이은 반복과정에서 보다 많은 디자인 영역을 탐색하자는 것이다.

새로운 게임의 디자인 공간을 미지의 세계라고 상상해보자. 디자이너들은 지평선 너머의 존재를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실험과 검증이 없다면 막연한 가정은 순전히 가설로만 남는다. 따라서 최종 제품으로 안착하기 전까지는 매번 급격한 변화를 가해야 팀이 탐색해볼만한 새로운 땅이 열린다.

하나의 좋은 게임이 두 개의 훌륭한 게임보다 낫다

시드는 이것을 "비밀공작 규칙"이라고 불렀다. 자신이 90년대 초에 만들어 그다지 성공하지 못했던 스파이 게임을 가리켜 지은 이름이다.

"내 실수는 서로 충돌하는 두 개의 게임을 함께 둔 것이었다. 건물에 침투해서 온갖 단서를 집어오는 액션 게임이 있었고, 악당의 정체와 소재를 알아내는 미스테리물 같은 줄거리의 스토리가 있었다. 개별적으로는 각 부분이 하나의 좋은 게임이 될 수 있었다. 함께 두자 서로 싸우기 시작했다. 풀어야 하는 미스테리가 있는데 이 액션 시퀀스를 지나가며 멋진 액션을 하고나니 "무슨 미스테리를 풀려고 했더라?" 싶어진다. 《비밀공작》은 한 미션에서 실시간으로 10분쯤 소비하는 액션이 너무 강렬했고 미션이 끝나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감각을 잊어버리기때문에 스토리와 액션의 결합이 좋지 않았다.

즉, 각각의 부분이 각자 재미있다고 해도 플레이어가 어느 한 쪽에도 주의를 집중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 공존이 경험을 망치게 된 것이었다. 이 규칙이 시사하는 바는 모든 디자인 선택은 다른 선택과 관계되어야만 가치를 지니며, 각자가 비용/이득의 트레이드오프를 동반한다는 점이다. 전략적인 게임을 만드는 선택은 전술적인 게임을 만들지 않는 선택을 뜻한다. 따라서 그 자체로 "재미있는" 아이디어일지라도 목표가 되는 경험으로부터 플레이어의 주의를 돌린다면 게임을 좋게 만들어주지 못한다. 이 규칙은 문명 시리즈가 절대 깊이있는 전술 전투를 손대지 않는 이유다."

하지만 때로는 여러 게임이 서로 조화를 이루며 공존할 수 있다. 시드의 게임 《해적!》은 전투와 항해, 댄스 미니게임의 집합으로 만들어진 성공한 게임의 예다. 하지만 언제나 각각의 경험이 아주 짧아서(최대 몇 분) 해적 롤플레잉이라는 메타게임이 중심을 잡게 해준다. 각각의 짧은 도전은 모든 스페인 도시를 약탈하거나 잃어버린 친족을 구하는 더 크고 중요한 길을 걸어가는 작은 한 걸음이었다.

구분되는 하위 게임을 성공적으로 혼합한 또다른 예가 전술적인 턴제 분대 전투 게임과 전략적인 실시간 자원 관리 게임을 결합한 《엑스컴》이다. 《해적!》과 마찬가지로 《엑스컴》이 제대로 된 것은 게임이 집중하는 부분이 있었다는 점이다. 《엑스컴》의 경우는 해병과 침략 외계인 사이의 매력적이고 전술적인 전투에 집중했다. 고수준의 전략적인 메타게임은 매번 약 30분 정도 걸리는 전투를 중요하게 만드는 느슨한 뼈대를 제공하려고 존재할 뿐이다. 나중의 자원 관리를 위해 외계인과 싸우는 게 아니라 앞으로의 전투에서 더 잘 (더 재미있게) 하기 위해 자원을 관리한다.

게임이 완성된 뒤에 조사하라

역사상 가장 성공한 게임들 중 다수(《심시티》, 《그랜드 테프트 오토》, 《문명》, 《롤러코스터 타이쿤》, 《심즈》)가 현실 세계를 소재로 하여 누구에게나 친숙한 개념으로 게임플레이를 구축함으로써 잠재 고객층을 넓혔다. 그런데 현실을 소재로 한 게임을 만들다 자신이 얼마나 조사를 했는지 과시하려고 온갖 잡스럽고 알기 어려운 지식을 게임에 우겨넣는 버릇이 생길 수도 있다. 이 버릇은 플레이어가 이미 알고 있는 지식으로 게임을 할 수 있다는 현실 세계 소재가 지닌 가치를 망쳐놓는다. 강한 군대가 되려면 화약이 좋다는 점은 모두 안다. 경찰서가 범죄를 줄이고 마약 밀매가 불법이라는 점은 모두 안다. 시드는 "게임을 플레이하는 데 디자이너가 읽은 책들을 똑같이 읽게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게임은 교육 면에서 훌륭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지만 많은 교육자들이 기대하는 방식과는 다르다. 디자이너들은 사실 관계가 틀린 것이 들어가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겠지만, 상호작용하는 경험의 가치는 사실과 수치의 전달이 아닌 단순한 개념들의 상호 영향이다. 세계 초기 문명들이 강가에서 나타났다는 점은 많은 사람들이 알지만, 그 어느 것도 초기 농경 단계에서 가장 많은 식량을 생산하는 타일을 좌우하는 《문명》의 단순한 규칙만큼 효과적으로 그 개념을 이해시키지는 못한다. 핵심 작업이 끝난 뒤 역사 시나리오나 텍스트, 그래픽의 디테일로 게임 깊이에 살을 붙이는 데는 조사가 큰 가치가 있을 것이다. 다만 새로 게임을 배우는 것이 녹록치 않은 경험임을 기억하고, 게임을 시작하는 플레이어가 모든 디테일을 알 거라는 기대로 접근하기 쉬운 소재의 이점을 던져버리지 말자.

재미는 디자이너나 컴퓨터의 것이 아닌 플레이어의 것

많은 디자이너들이 스토리 기반 게임을 만들면서 고유명사와 자음, 아포스트로피로 가득한 배경이야기에 지나치도록 열중하여 들뜬다. 또 복잡하고 세세한 시뮬레이션을 바탕으로 한 게임에서 알고리듬 모델의 작용이 감추어져서 특히나 이해하기 어려워지기도 한다. 시드는 이런 게임들에서 재미를 보는 건 플레이어가 아니라 디자이너나 컴퓨터라고 자주 말한다.

《문명 4》를 개발할 때 우리는 상당한 생산성 보너스를 주면서 플레이어가 연구할 기술과 지을 건물, 훈련할 유닛을 선택할 수 없게 만드는대신 국민의 선택을 시뮬레이션하는 숨겨진 모델에 의존하는 정부 유형을 실험했었다. 물론 알고리듬 구축은 굉장히 재미있었고 게임을 빼고 보면 흥미로운 이야기거리였다. 하지만 컴퓨터 혼자서 재미를 보고 있었고 플레이어는 소외되었기 때문에 잘라내버렸다.

게임을 제대로 만들려면 의미있는 선택 뿐 아니라 의미있는 의사소통도 필요하다. 플레이어에게 결과가 뒤따르는 결정을 맡기면서 그 결과를 이해할 수 없게 한다면 재미가 없다. 흔히 롤플레잉 게임은 진짜 게임플레이를 경험해보기도 전에 캐릭터 "굴림"으로 클래스나 스킬을 선택하게 해버린다. 전투의 실제 작동과 각 능력치의 작용을 알기도 전에 어떻게 야만인과 전사, 팔라딘 중 하나를 선택하겠는가? 선택은 영향력이 있으면서 정보를 제공해주어야만 흥미롭다.

시드의 말을 빌리자면, 플레이어가 "항상 스타가 되어야 한다." 디자이너인 우리는 게임 개발에서 플레이어의 대변자가 되어 디자인 결정이 플레이어의 작인(agency)과 기반 메커닉의 이해에 어떤 영향을 줄지 세심하게 고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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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밝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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